“영어만 하죠, 한국어는 못해요”…경쟁력 ‘0’ 한국어교육에 대한 자성

김현수(가명 51, 토론토)씨는 1.5세인 아들딸의 한국어 실력을 테스트해 보려고 그가 어릴 적 의무적으로 암기했던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읽어보게 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가 물어봤다. 결과는 자못 심각했다. 초등학교 때 이민 온 자녀에게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단어들은 너무 어려웠다. ‘민족 중흥’은 말할 것도 없고 ‘소질을 계발, 약진의 발판, 공익과 질서, 능률과 실질을 숭상,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 반공 민주 정신, 신념과 긍지, 민족의 슬기..’ 갈수록 모를 단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이런 문장을 1,5세, 2세들이 이해하기란 불가능 이상이다. 최근 한인 이민 1.5~2세를 위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국격 상승과 더불어 캐나다를 비롯해 일본이나 중국 등 세계적으로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데 반해, 정작 한인 차세대를 위한 한국어 교육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캐나다 이민 역사 초창기만 하더라도 한국이 못사는 나라로 여겨지던 시대여서 그랬는지 한국어를 잊고 산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집안에서도 영어만 쓰게 하면서 하루속히 자녀가 영어의 바다에 빠져 주류사회에 진입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러다 보니 자녀가 점차 한국어를 잊고 영어를 더 편리한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모국어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영어만 할 줄 알고 모국어인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시대가 됐다. 요즈음 주류 사회는 영어만 잘 하는 한국인 보다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인을 선호한다. 한국어 못하는 것이 이젠 더 이상 자랑거리가 못된다. 지구촌 시대에 모국어를 모른다는 사실은 도리어 약점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오니 어쩌면 후회가 많이 되기도 한다. 한국어를 배운다 해도, 아이들이 언어를 한창 습득해야 할 시기에 한국어 교육에 집중적으로 노출되지 않고, 단지 집에서 부모님들이 간간히 쓰는 한국어만을 접하게 된다면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한국어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어와 한국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언어는 시간을 얼마나 투입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한글학교에 간다고 해도 보통 주말에 두 세 시간 공부하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집에서 한국말을 한다고 해도 읽고, 쓰기 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세네카 대학 한국어교육 강사인 노지은(33, 에토비코)씨는 “2세들이 한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습득이 아닌 학습 체계로 들어서야 한다. 다시 말해, 이중언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규칙적이고 습관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한국인이라고 할 지라도 한국어의 네 영역 (말하기, 읽기, 쓰기, 듣기)을 골고루 잘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이 크며 부모부터 규칙적, 습관적, 일관성을 가진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에 따르면 가정내에서 한국어 학습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주 2-3회 한국어 일기 쓰기, 아이 수준에 맞는 짧은 글 번역하기, 교과서 내용 한 두 문장을 우리말로 바꿔보기, 월 1회 한국 동요 외우기를 권장한다. 또한 현지 신문에서 시사 뉴스 등 주류사회의 컨텐츠의 중요한 단어를 한국어로 알아보려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한다. 한국어 교육 문제는 커뮤니티와 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할 사안이다. 한인사회 차원에서는 각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충분한 예산을 바탕으로 훌륭한 한국어 교사를 확보하고 한국의 역사, 문화, 언어 교육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가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1.5~2세 자녀에게 모국어인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은 뿌리교육이라는 측면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자아정체성형성(self identity formation)에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이루어지는 가정교육과 부모의 모국어 사용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혹시나 소홀히 하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가정내에서 한국어로 아이들과 밥상머리에서 한국의 역사, 문화와 전통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자주 가지면 좋을 것이다. 모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하면 영어학습에 상승효과가 배가되기 때문에 가까운 한국학교에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캐나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