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졸업과 정상졸업이 대세였던 과거와 달리 학칙에 반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최대한 대학졸업을 미루는 대학생, 소위 ‘대학 둥지족’이 늘고 있다.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취업난을 해결하고자 졸업전 이른바 ‘스팩’을 좀 더 쌓기 위해 고의로 학점을 남겨두거나 휴학을 신청하는 다수의 대학 둥지족들은 대학가의 새 풍속도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대학시간동안 효율적으로 실력을 배양하는 대학생들은 실제적으로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눈총을 사고 있다.
조혜림(가명, 24, 토론토) 씨는 재작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에1년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기간이 너무 긴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는 부모님을 향해 조씨는 일년의 휴학기간은 자신이 더욱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일종의 ‘투자기간’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비지니스 전공인 조씨는 우선 휴학기간 동안 칼리지를 통해 취약과목이었던 경제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것을 계획했다. 더불어 취미인 그림그리기도 제대로 배워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르네상스형 인간’이 되리라 다짐했다. 휴학 첫날, “아직 시간도 많은데 서둘러서 뭐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여유있는 하루를 보냈다. 또 평소 제대로 자지 못했던 잠을 보상받고 싶다는 마음에 정오가 다 되어야 일어나는 ‘늦잠꾸러기‘ 생활이 하루이틀 이어졌다. 결국 ‘조금만 쉬고 공부하자’고 생각했던 조씨는 휴학 후 3개월이 다 되서야 세워놓은 계획을 하나도 실행치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근처 칼리지들을 찾아보았을 때는 이미 조씨가 원하는 경제학 수업은 학기가 시작돼 몇개월 후에나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쉬운대로 미술학원부터 먼저 등록했지만 ‘내가 고작 취미생활 하려고 휴학을 했나’하는 자책감에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몇개월의 기다림 끝에 두어개의 경제학 수업만 듣고 휴학기간을 마친 조씨는 시간만 낭비한 것 같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괴로워해야만 했다. 현재 구직중인 조씨는 “차라리 휴학하지 말고 미리 졸업했더라면 사회경력이라도 더 늘었을텐데 후회가 된다”고 속상해 한다.
물론 조씨같이 실패한 케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효과적인 시간관리를 통해 당초 세웠던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 자신의 가치를 올린 ‘성공 대학 둥지족’도 있다. 이영진(가명, 25, 미시사가)씨는 3학년 초, 학교에 한학기 휴학을 신청했다. 늦은 나이에 캐나다에 온 탓에 불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씨는 휴학기간동안 국내 공식 공용어인 불어 공부와 교수가 평소 강력히 추천했던 컴퓨터 관련 자격증 취득을 계획했다. 휴학 2주 전, 이씨는 휴학 당일부터 바로 다닐 수 있도록 불어 학원에 미리 등록했다. 또 컴퓨터 자격증 관련 서적을 미리 구입해 놓고 매일 공부할 양을 정한 일일계획표를 짜두었다. 미리 세워놓은 꼼꼼한 계획 덕분에 휴학과 동시에 바쁜 하루를 시작하게 된 이씨는 휴학기간이 끝나기 전에 당초 목표했던 자격증을 성공적으로 취득했으며 간단한 책정도는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불어 실력을 갖추게 됐다. 학교로 복귀한 후에도 휴학기간동안 향상시킨 불어 실력을 발판삼아 불어공부를 지속한 결과 대학 졸업즈음에는 수준급의 불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현재 이씨는 컴퓨터 자격증은 물론 한국어 포함 3개 언어의 구사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우수한 조건으로 정부기관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둥지족’은 높은 취업장벽을 뚫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고뇌를 반영한다. 그러나 대학 둥지족이 꿈꾸는 알찬 휴학기간은 뚜렷한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효율성을 성취할 수 있다. 지나친 자신감과 의욕으로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경우에는 좌절감을 불러일으켜 금방 포기하게 되고 결국 시간만 낭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세태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소신있는 자세”다. 토론토의 한 중소기업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신기훈(가명, 47)씨는 “비슷한 능력이라면 기타의 추가적 조건을 갖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업체로서는 당연하다”고 설명하며 “그러나 직종에 따라 회사에서 직업훈련이 별도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어쨌든 대학을 더디 졸업하는 것보다는 사회에 진출해 경력을 쌓아가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맹목적으로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소신을 가지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실력을 배양하는 자에게 취업의 문은 항상 열려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