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 규제…2092년까지 99년 간 임대거주
섬공항 옆 모래사장엔 명물 ‘누드비치’도
토론토 거주자로서 여름철 주말에 가족과 함께 페리를 타고 토론토섬(Toronto Islands)을 한두 번 가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토론토섬을 구성하는 여러 섬 중 어린이 놀이공원 센터빌(Centreville) 등 위락시설이 몰려있는 센터 아일랜드(Centre Island)다. 센터 아일랜드의 동쪽의 워즈 아일랜드(Ward’s Island)와 서쪽의 핸란스 포인트(Hanlan’s Point)를 찾는 사람들은 비교적 적다.
그러나 필자와 같이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워즈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타는 것을 선호한다. 워즈 아일랜드와 수로(水路) 건너 알곤퀸 아일랜드(Algonquin Island)에 가지런하게 늘어선 마을 골목길은 걷기에 쾌적한 분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토론토섬으로 가는 여객선은 베이 스트릿과 퀸스키 웨스트 교차로 부근 웨스틴 하버캐슬 호텔 앞 페리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센터 아일랜드, 워즈 아일랜드, 핸란스 포인트 등 3곳으로 운항한다. 이중 주민들이 거주하는 워즈 아일랜드로 가는 배는 연중무휴 운항한다.
워즈 아일랜드와 알곤퀸 아일랜드를 한바퀴 돌아보면 별천지에 온 느낌을 받는다. 호수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을 앞길에서 석양에 바라다 보이는 CN타워를 배경으로 한 토론토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은 가히 환상적이다.
워즈와 알곤퀸 아일랜드에는 주택 262동이 있다. 양귀비 등 아름다운 꽃으로 덮여있는 2개의 마을은 마치 동화 속의 정경을 연상케 한다.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보기 흉한 집도 있지만 대다수는 정원과 집이 잘 어울린 전원주택이다. 2개섬 중에서 아치형 목조다리 건너에 있는 알곤퀸 아일랜드가 워즈 아일랜드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다.
그러나 이같은 자연환경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기에는 워즈 아일랜드, 그후 알곤퀸 아일랜드 외에 핸란스 포인트와 센터 아일랜드에도 주택이 있었다. 거주자들이 수천 명에 이르렀고 오늘날보다도 훨씬 많은 상용 시설물들이 커뮤니티와 방문자들을 위해 있었다.
1833년도에 마이클 오코너(Michael O’Connor)가 이 섬의 첫 번째 호텔을 오픈했다. 도시생활에서 도피할 곳을 찾는 토론토시민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비즈니스가 호황을 누렸다. 시민들은 이 섬에서 산책과 스포츠 행사 등으로 정신적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심지어 겨울에도 사람들은 낚시를 위해,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빙상요트를 타기 위해 이 섬을 찾았다.
187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핸란스 포인트는 연극공연장, 댄스홀, 대형 위락공원이 들어섬으로써 ‘캐나다의 코니 아일랜드(뉴욕항 롱아일랜드에 있는 유원지)’가 됐다. 1897년에는 오늘날 아일랜드공항 자리에 야구장이 건설됐다. 베이브 루스(Babe Ruth)가 그의 첫 메이저리그 홈런을 날린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도시거주자들이 이 섬의 경치와 생활양식에 매력을 느끼면서 많은 별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핸란스 포인트는 ‘도시의 여름휴양지’로 성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센터 아일랜드는 한때 약국, 세탁소, 영화관, 이발소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된 비즈니스가 몰려 성시를 이뤘다. 토론토의 부유층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로열 캐네디언 요트클럽(Royal Canadian Yacht Club)’ 부근에 빅리아풍의 대형 여름별장을 지은 곳이 바로 이곳, 특히 호반이었다.
1953년 메트로토론토시의회(Council)의 발족으로 토론토섬의 풍경과 거주자들에 대한 정책이 급변했다. 프레드 가디너(Fred Gardiner) 의장은 이 지역의 현대화를 시작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섬 부지와 리스를 구 토론토시에서 메트로토론토로 이관함으로써 비즈니스와 주택의 신속한 철거가 뒤따랐다. 68년까지 호변 주택들이 모두 사라져 갈 무렵, 워즈 아일랜드와 알곤퀸 아일랜드의 주민들이 항의를 하며 들고 있어났다. 이들의 커뮤니티를 구출하기 위한 투쟁은 93년 토론토섬 거주커뮤니티 신탁기구(Toronto Islands Residential Community Trust)가 발족돼 2092년까지 99년간의 부지 임대권을 쟁취할 때까지 20년 이상 동안이나 계속됐다.
*거주지의 기원
워즈 아일랜드 커뮤니티는 1880년대에 천막촌으로 시작됐다. 최초의 여름철 천막 집단거주지는 1899년에 형성됐다. 거주자 8명은 한 시즌에 각각 10달러를 지불했다. 설치된 천막이 계속 늘어나자 1913년에 이르러 시당국은 이 커뮤니티를 스트릿으로 구획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루바닥을 깔고 부엌과 베란다를 만듦으로써 천막에서 별장구조로 점차 진화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집의 형태가 생겨났다.
애초에 알곤퀸 아일랜드는 소형선박의 통과를 위한 수로를 제공하는 단순한 모래톱이었다. 처음에 ‘선피쉬 아일랜드(Sunfish Island)’로 알려졌던 알곤퀸 아일랜드는 쓰레기 매립작업을 통해 확장됐다. 1938년에는 짐배로 핸란스 포인트로부터 수송돼온 별장 31동을 세우기 위해 스트릿이 구획됐다. 이 집들은 아일랜드비행장 건물을 짓기 위해 밀려난 것들이었다. 거주자들은 핸란스 포인트에서 더 남쪽으로 별장을 옮기거나 알곤퀸 아일랜드에 재정착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토론토섬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스카보로 블러프(Scarborough Bluff)에서 밀려나온 모래와 자갈이 호수물의 이동에 밀려 던강 어귀에 퇴적됐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바람의 힘으로 쌓인 모래등성이가 8km에 달하는 반도를 형성하게 됐다. 이 반도는 1852년 심한 태풍으로 파도에 의해 육지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해 1858년에 이르러서는 오늘날 토론토섬이라고 하는 호수 속 오아시스가 생겨났다.
소방서와 교회(St. Andrew-by-the-Lake), 분위기 있는 카페(Rectory Cafe), 민박집(bed and breakfast)이 있는 워드 지역에서 산책코스로 인기 있는 곳 중 또 하나는 온타리오호수쪽 물가를 따라 이어져 있는 보드워크(boardwalk)다.
[(사진)토론토섬에는 3곳의 비치가 있다. 이중에 핸란스 포인트에 있는 비치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선택사항(clothing optional)인 ‘누드비치’다. 사진은 누드비치로 들어가는 길목.]
필자는 이 지역을 두루 돌아다닌 후에 워드 아일랜드 선착장에서 출발해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서쪽 끝 핸란스 포인트의 선착장이 있는 곳까지 완주했다. 반달같이 생긴 토론토섬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거리는 약 6.5km
토론토섬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는 섬을 한바퀴 도는 트램카(Tram car) 혹은 자전거를 이용한다. 기차같이 3칸을 단 트램카는 센터아일랜드의 분수대 옆, 자전거 임대하는 곳은 센터 아일랜드의 후미 선창 옆 탈의장 부근에 있다. 자전거는 1인용에서 가족용까지 다양하다. 트램카는 워드 아일랜드 구역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주민들의 생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1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군도인 토론토섬은 뱃놀이에 적합한 지역이다. 센터 아일랜드에서 워드 아일랜드로 가는 길목에 있는 보트하우스에서 카누 등을 빌려 수로를 따라 섬을 일주할 수도 있다.
센터 아일랜드에서 서편으로 진입하면 오른편으로 어린이물놀이터(Wading Pools/ Saturn Playground), 어린이가든(franklin Children’s Garden), 학교(Island Public and Natural Science School), 물 정화처리장(filtration plant), 예술센터(Gilbraltar Point Centre for the Arts), 등대(Gibraltar Point Lighthouse)를 차례로 지나게 된다.
당초 1808년에 건설된 석조타워인 등대는 토론토 최초로 세워진 것이다. 이 타워는 원래 52피트이고 흰색 램프가 고정돼있었으나 1832년에 82피트로 증축됐다.
1916~17년 이 섬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전기 라이트가 설치됐다.
이 등대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장소이기도 하다. 첫 번째 등대지기 래드뮬러(J. P. Rademuller)는 1815년 1월2일 자취를 감췄다. 몇 년 뒤 래드뮬러의 것으로 믿어지는 해골이 등대부근에서 발견됐다. 오늘날까지 지브롤터등대에는 유령이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대를 지나면 왼쪽 호수변에 비행장(Island Airport)과 맞닿은 한적한 백사장이 잇달아 있다. 이 곳이 누드비치다. 비치로 들어가는 여러 곳의 진입로에는 ‘누드비치’라는 말 대신 ‘옷이 선택인 비치(Clothing Optional Beach)’라고 쓴 표시판이 붙어있다. 필자는 이 단어의 의미를 언뜻 알아 차리지 못하고 보라는 듯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들어갔다가 얼른 수건으로 감추고 황급히 되돌아서야 했다.
커뮤니티 신탁기구
토론토섬 거주 커뮤니티 신탁은 토론토섬 거주자와 일반대중을 대신해 아일랜드 커뮤니티와 연관된 대지와 건물들을 관리하기 위해 관계법(Toronto Islands Residential Stewardship Act·Bill 61)에 의해 설립된 기구다. 이 법에 의거, 워즈 아일랜드와 알곤퀸 아일랜드의 거주자들은 자신들의 주택에 대한 소유권과 주택이 세워진 부지를 최장 99년 동안 임대할 수 있다.
이 신탁의 핵심 원칙중의 하나는 공공부지에 세워진 아일랜드의 집과 리스의 판매를 보장하되 뜻밖의 횡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법에 따라 집과 리스는 신탁을 통해서만 거래되며 구매자 리스트(Purchasers’ List)에 등재된 사람만이 매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 법은 주택과 대지 리스의 후보자명단을 작성토록 신탁에 요구하고 있다. 이 리스트는 1994년 1월에 확정됐다. 리스트에 등재되는 이름은 최대 500명이다. 이 리스트에는 현재 최대 숫자가 올라 있으며 통상적으로 1년에 한 번 빈자리가 허용됐을 때 다시 오픈된다. 제비뽑기를 해서 추첨된 사람이 리스트의 마지막에 오른다. 제비뽑기에 신청할 수 있는 최종기한은 하나의 주요 주말신문과 아일랜드 커뮤니티 웹사이트(http:/torontoisland.org/tirct)에 광고된다. 1994년 구매자 명단이 생긴 이래 47채의 주택의 매매와 리스가 이뤄졌다.
하나의 주택이 리스나 매매를 위해 나오면 일반적으로 리스트의 상위 150명에게 오퍼를 보내고 일반적으로 상위 100명 안에서 구매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196번째 사람에게까지 순서가 내려간 때도 있었다. 연간 기준으로 판매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평균 1년에 2~3채가 거래된다.
500명중 최하위로 등재된 사람에게는 언제 차례가 돌아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정상적으로 첫 100명중에서 원매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느 주어진 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명단에서 떨어져나갈지 역시 알 수 없다. 지난 수년동안 매년 평균 20명이 명단에서 자신의 위치를 갱신하지 않았다.
대지리스의 가치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한 필지의 리스 비용은 워즈 아일랜드가 3만6천달러, 앨공퀸 아일랜드는 4만6천달러였다. 93년도에 법이 공포된 이래 리스가격은 형태에 따라 7천~1만2천달러 정도 올랐다. 임대비는 1회 지불로 끝난다.
주택의 매매는 투기를 막기 위해 엄격히 규제된다. 섬 주택소유자는 유산으로 타인에게 물려줄 수 없으며 배우자나 자녀 외의 사람들에게 넘기지 못한다. 판매는 신탁기구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법에 따라 집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연간 최소한 220일 동안 거주해야 하며 주(主)거주지로 지정해야 한다(소득세 신고시). 대지리스 규정에 의하면 아일랜드 주택은 파트타임 거주지나 여름별장 혹은 임대용 부동산으로 사용할 수 없다.
구매자 리스트에 포함되기 위한 모든 신청은 서면으로 해야 하며 신청비 100달러와 수속비 10달러를 머니오더 혹은 수표로 첨부해야 한다. 구매자 리스트 등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갱신비(현 35달러)를 납부해야 한다. 갱신비는 매년 3월에 낸다. 갱신에 대한 1회의 통지(notice)가 발송된다. 그해 3월31일까지 갱신비를 내지 않으면 명단에서 삭제된다. 신탁기구는 신청서에 적힌 주소에 의존하기 때문에 주소가 변경될 경우에는 서면으로 알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