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8년 넘은 ‘재외동포 거소신고증’ "정착 안 돼 불편만 가중"

여권 제출요구 여전 (서울)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동포들에게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명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거소증(국내거소신고증) 제도가 시행 8년이 넘도록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업무상 장기간 국내에 체류하는 재외동포들은 “은행·부동산 등 업체 담당자들 중 상당수가 거소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다 알고 있는 사람들도 신원확인을 위해 여권제출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동포들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불편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재외동포들은 “제도가 법률로 공포됐음에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은 재외동포에 대한 정부와 시민들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이 문제를 참정권과 같은 인권문제로 보고 헌법소원을 준비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은행계좌 개설의 경우, 법률상 ‘국내거소신고를 한 재외동포는 예금·적금의 가입, 이율의 적용, 입금과 출금 등 국내 예금관계의 이용에 있어서 외국환거래상의 거주자인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국내은행 10곳 중 3곳은 거소증과 함께 여권을 반드시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동산 역시 ‘국내거소신고를 한 외국적 동포는 대한민국 안에서 부동산의 취득·보유·이용 및 처분을 함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대부분 업체들이 여권사본을 주문하고 있다. 이밖에 국내 통신 3사 중 2곳이 거소증과 함께 여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인터넷 실명인증의 경우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효력을 갖도록 부여된 13자리 번호가 일부 대형 포털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무용지물에 그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료보험의 경우에는 거소증만 제출해도 국민과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주민등록증 대신할 수 있는 증명카드로 거소증을 통용시키려던 입법취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특히 재외동포 중 영주권자가 아닌 시민권자는 지하철 우대권을 발급 받을 수 없도록 관련법에 명시돼 있는 등 재외동포특별법이 철도법 등 타 법률과 상충되는 허점도 드러나 정부의 무성의를 질타하는 동포들의 목소리가 높다. 거소증 발급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여권제출을 동포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국가가 통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법적조항은 없다”며 “우대권과 같은 복지관련 법은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거소증은 1999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외국적 동포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 같은 해 12월부터 시행됐다. 동포법 제9항은 법령에 규정된 각종 절차와 거래관계 등에 있어서 주민등록증, 주민등록증·초본, 외국인등록증 또는 외국인등록 사실증명을 요하는 경우에는 ‘국내거소신고증’ 또는 ‘국내거소신고사실증명’으로 이에 갈음할 수 있다고 정의돼 있다. 거소증은 30일 이상 한국에 체류할 목적으로 입국하는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며, 전국 15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받을 수 있다. 한편 지난 2월 발표된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거소신고를 한 재외동포는 총 9만2,778명으로 미국동포(5만2,633명)가 절반이상을 차지했으며 캐나다(1만7,374명)·일본(8,025명)·뉴질랜드(4,546명)·호주(3,828명)·독일(1,05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중 시민권자는 3만5,309명, 영주권자를 포함한 재외국민은 5만7,469명이었다. (자료: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