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출신 이민자 취업 푸대접

3년 전 토론토로 이민을 오기 전까지 구미트 밤브라(48)라는 여성은 캐나다 입장에서 보면 ‘분에 넘치는’ 엔지니어였다. 케냐 출신으로서 공학 학위를 3개나 가지고 있는 그녀는 18년 동안이나 자기 소유의 비즈니스를 경영했다. 하천 관리 시설을 건설했으며, 세계은행 지원을 받은 이런 저런 공사를 많이 따내기도 했었다. 그녀는 웬만큼 부유하고 인물도 좋으며,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밤브라는 토론토에 이민을 온 이후 자기 전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인터뷰조차 하지 못했다. “힘이 쭉 빠졌다. 이곳에 건너오기 직전 매우 큰 프로젝트를 막 끝냈었다. 한 도시의 상하수도와 쓰레기 처리 시설을 종합적으로 재설계한 프로젝트였다.” 이뿐 아니다. 그녀는 영국도시공학자협회의 회원이다. 이 협회에 가입한 여성은 전세계를 통틀어 18명뿐이다. 온주엔지니어협회는 밤브라에게 캐나다 경력이 1년도 없다고 라이센스를 주지 않았다. 18년 경력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엔지니어였지만 캐나다에서는 오로지 “캐나다 경력” 타령만 했다. 그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바로 저 캐나다 라이센스가 없으면 경력을 쌓기 위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원봉사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 사스가 발생했을 때 의료용 마스크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캐나다 컨프런스위원회에 따르면, 캐나다가 이민자의 전문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아 사장시키는 비용이 1년에 10억달러가 넘는다. 이 문제는 정치가와 로비 그룹, 학자들 사이에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외국에서 인재들을 수혈 받지 않고서는 캐나다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혈만 받고 활용은커녕 사장시키는 게 문제이다. 캐나다로서는 국가적인 손실이고, 고급 기술 이민자로서는 자기 인생을 망치는 일이다. 30일 토론토대 법대는 이같은 긴급 사회적 이슈를 검토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회의 제목은 ‘모자이크 일자리 만들기.’ 사회학자, 법학 교수 및 관련 기관 관계자가 참여해 고급 기술 이민자들의 자격증 인정 절차 등에 관해 논의했다. 저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도 논의됐다. 캐나다 사회의 푸대접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 이민자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토론토 대학의 한 법학 교수는 “이같은 법적 소송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종의 계약 불이행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이민 정책과 주정부 실무자들 사이에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다. 주정부 실무자들은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캐나다는 고급 기술자 부족난을 겪고 있다. 그래서 고급 기술 인력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저 고급 기술 이민자들이 자기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하고 이 교수는 비판했다. 캐나다컨퍼런스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한 학자는 “전문 이민 인력을 활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년에 10억달러가 넘는다. 고용되지 않았거나 불완전 고용된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 학자는 “이 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경제적 이슈이다. 연방정부든, 주정부든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해야 하고, 또한 고급 기술 이민자들을 빨리 해당 전문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 그 과정을 효율적으로, 쉽게 만들어야 한다.” 1994~2000년 사이에 온주에 정착한 이민자의 73%가 엔지니어나 공학 기술자였다.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추세이다. 캐나다에서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시험을 치르거나 어떤 경우에는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다시 받아야 한다. 온주엔지니어협회가 요구하는 이같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구미트 밤브라는 이곳에 사는 것을 포기하고 모국인 케냐로 되돌아갔다. 지난해 그녀는 토론토로 다시 왔다. 이번에는 이민자가 아니라 연구자 입장이었다. 그녀는 최근 엔지니어위원회를 재구성하는 일에 공동 기획자로 참여했다. 정부가 용역을 준 연구 프로젝트로, 그 내용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엔지니어들이 캐나다에서 직면하게 되는 장벽들이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지닌 진짜 기술을 이곳에서 적용할 수 있었다면 나는 캐나다경제에 훨씬 더 큰 이익을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밤브라는 밝혔다. 그녀는 자기의 전문성을 이곳에서 살리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 자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