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 빠를수록 좋을까

조기교육 빠를수록 좋을까 ‘조기교육’ 빠를수록 좋을까 전문가들 “5세전 ‘정규교육’ 불필요” 역효과 경고 불구 “한발이라도 빨리” 학습지도업체 사이서도 찬반론 교차 몬트리얼 교회의 한 쿠몬(Kumon)학원. 『1, 2, 3, 4, 5….』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바네사 카샤니(지난달 만 3살이 됐다)양이 큰소리로 20까지 숫자를 헤아리고 있다. 바네사는 옆에 앉은 선생님의 「눈흘김」에도 아랑곳없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학습장을 넘겨가며 숫자를 암송한다. 『취학연령전 어린이(pre-schooler)들을 위한 우리 학원의 새 프로그램이 암기위주거든요. 게다가 3살짜리한테 뭘 더 바라겠습니까.』 지도교사 조이 루프카야사씨의 푸념이다. 캐나다 쿠몬의 3만8천여회원중 바네사와 같은 코흘리개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일본계업체는 유치원 입학을 앞둔 2~4세 어린이들을 향후 주고객층으로 상정해놓고 있다. 사실 쿠몬스타일의 조기교육이 우수한 성적을 보장해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교육전문가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가 학교생활에서 한발이라도 앞서나가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조기교육의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급성장하는 학습지도(tutoring) 업계의 최대胎?쿠몬은 연필을 제힘으로 쥘 수 있고 15분동안 선생님과 함께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저귀」와 「학습」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는 것. 실제로 쿠몬의 회원 가운데는 18개월짜리 젖먹이도 있다. 바네사의 엄마 애나 카샤니씨는 원래부터 「조기교육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바네사의 오빠 비잔(8)이 구구단을 익히는 데 애를 먹자 쿠몬의 문을 두드렸다. 놀랍게도 몇달만에 진도를 따라잡은 비잔은 이젠 자기반에서 가장 산수를 잘하는 아이중 하나가 됐다. 애나씨는 즉시 1학년짜리 둘째 아들 알렉스(6)도 학원에 등록시켰다. 알렉스는 이미 200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그리던 어느날 강의실 밖에서 오빠들을 기다리며 심심해 하던 바네사가 자신도 배우고 싶다고 졸라댔다. 결국 이들 3남매는 매일 저녁 한 학원에 모여 15분씩 학습지를 풀며 산수공부를 하게 됐다. 카샤니씨는 『학교에서는 뒤쳐지는 아이들을 신경써주지 않는다. 진작 알았다면 큰애도 막내나이부터 학원에 다니게 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선택에 만족을 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교육은 학부모들과 조기교육 전문가들 사이에 뜨거운 논란을 촉발시키고 있다. 유아대상 학습의 필요성과 효율성에 대해서는 주장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힐렐 고얼먼 박사는 『이러한 교육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증거는 단 한가지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어린이들의 두뇌는 5세 이전까지는 정형적 교육을 받아들일 정도로 발달되지 못한다』며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교과과정 계획시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북유럽 어린이들은 6~7세가 넘어야 읽고 쓰기를 배우기 시작하지만 학력평가시험에서 북미의 또래들에 버금가는(종종 나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조기교육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얼먼박사는 『춤·연극·예능활동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운동능력과 의사소통기술을 배울 수 있는 질좋은 탁아시설, 가정에서의 꾸준한 책읽기와 대화가 그 나이 또래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다워야 합니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인 아이들에게는 숫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숨은그림찾기 놀이가 훨씬 바람직한 교육법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아기의 숫자공부는 단순한 암송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토론토대 산하 아동연구소(ICS)의 앤드루 비밀러 박사는 『5가 7보다 작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숫자를 가르치는 것은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한다. 『4살짜리가 100까지 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숫자를 외운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죠. 그 나이 때는 단순히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크고 작음의 개념정도만 알려주면 충분합니다. 숫자와 기호는 그 다음에 배우면 됩니다.』 구엘프대의 교육심리학 전문가 질리언 도허티 교수는 유아들에게 「정규학습」을 강요할 경우 겉으로는 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여도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2~3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미국의 한 연구에서 학습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은 놀이환경에 있는 또래들보다 손톱을 깨물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쿠몬의 양대 라이벌인 옥스포드학원(Oxford Learning Centre)과 실밴학원(Sylvan Learning)도 너무 빠른 정규교육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실밴은 4살반이 넘어야만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옥스포드는 3~5세 유치원입학반을 놀이중심의 몬테소리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수한 학교성적을 원하는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전문가들의 답변은 한결 같다. 많이 읽어주고 이야기하며 놀아주는 것. UBC의 린다 시걸 교수(교육학)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 소재를 즐겁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읽어주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라고 설명한다. 함께 박물관이나 동물원을 찾는 것도 훌륭한 교육법이다. 사이먼프레이저대의 키에란 이건 교수(교육학)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부모와 자녀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지어낸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는 방법을 조언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부모들에게 먹혀 들지 않는 분위기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학교내 경쟁, 한층 까다로워진 교과, 낙후자를 배려할 여력이 없는 공교육예산, 좁아져 가는 대학문 등등을 생각할 때 한시가 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근로계층이 대다수인 이들 부모들은 주당 80~150달러의 학원비가 상류층의 사립학교비용에 비해 훨씬 저렴한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셔널 포스트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