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코레아노’들 (3) 쿠바한인회 한글학교 정부압력으로 명맥 끊길 판

작년 말부터 운영중단…‘선교용’ 의심 탓 쿠바 문화원에 등록된 한글학교가 지난 11월 정부당국의 지시로 문을 닫아 한인후예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국가평의회 산하단체인 ‘호세 마르티(Hose Marti) 문화원’에 소속된 한글학교는 아바나(La Havana)에 본교를 두고 마탄사스(Matanzas)와 카르데나스(Cardenas) 등 2개 지역에 분교형식으로 운영되어 왔었다. 학생 수는 아바나본교가 약 50명이고 분교는 그보다 적다(호세 마르티 문화원은 (스페인으로부터) 쿠바 독립의 ‘사도(使徒)’로 불리는 호세 마르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쿠바에 진출한 한국계 파나마 회사인 앰펠로스(Ampelos)의 줄리 문(문윤미) 부장은 지난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외무부는 한글학교 담당자에게 교육부와 협의해서 운영하라는 지시와 함께 협의가 끝날 때까지 운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문 부장은 “한글학교 운영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들이 부상한 데 따른 것”이라며 “잘 해결돼 운영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인회 관계자들도 “한글학교 정상화를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고 문화원에서도 도와주고 있는 데다 한글학교를 원하는 한인후예들이 많기 때문에 잘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문 부장이 밝힌 문제점은 무엇일까. 쿠바인에 대한 교육은 정부부처인 교육부가 전담하도록 되어있는데 외국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호세 마르티 한글학교 호세 마르티 한글학교는 쿠바 등 중남미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업가인 김동호 앰펠로스 그룹회장의 도움으로 설립됐다. 앰펠로스는 그동안 한글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해왔다. 파나마 등 중남미 여러 국가에 회사를 갖고 있는 김 회장은 부모를 따라 파라과이로 떠난 이민 1.5세로 스페인어 등에 능하고 사업수완이 뛰어나다. 호세 마르티 한글학교가 문을 닫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한글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선교활동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는 교회와 종교기관 밖에서의 종교활동이 금지돼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초빙돼온 교사 중 일부는 목사 자격을 가진 선교사들이다. 한글교육과 선교활동을 병행해온 지모 선교사가 미국으로 추방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인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교육과 의료에 중점을 두면서 이 두 분야에 대해 국민들에게 무상혜택을 제공해고 있다. 이 덕분에 중남미국가 중에서는 상위에 속하고 문맹률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자랑하고 있다. 한글학교가 일시 중단됐다는 소식을 접한 세계교회협의회(WCC) 중남미지역 담당회장인 드라오펠리아 오르테가 수아레즈 목사(Rev. Dra Ofelia Ortega Suarez·73)는 “(한글학교 운영이 중단된 것이) 애석하다(too bad)”면서 “쿠바교회협의회를 통해 내막을 알아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글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바나대에서 정식학과는 아닐지라도 외국어학당 같은 곳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에서 정식으로 교수가 파견되는 것이 최선이지만 너무나 요원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쿠바를 방문한 실버미션 회원들도 한글학교가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원했다. 실버미션팀은 앞으로 쿠바한글학교를 위해 물심양심으로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토론토에서 간 실버선교팀 일행이 둘러본 마탄사스, 카르데나스, 아바나 등 3개 지역 한인회 중에서 카르데나스와 아바나 한인회에 속한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지도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카르데나스에서는 한글학교 학생(남녀노소)들이 설날과 추석 등 명절 때마다 합창하던 아리랑과 옛날 애국가에 곁들여 가요 ‘만남’을 기타반주에 의해 맞춰 멋들어지게 불러 토론토의 방문객들을 감동케 했다. 아바나 한인회가 마련한 한글학교 학생들은 카르데나스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한인회를 이끄는 임원 중 한 사람인 어르나 림 김은 찬송 ‘나같은 죄인’과 ‘과수원길’을 독창한 뒤, 찬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열창했다. 발전기 설치작업을 위해 쿠바에 진출해 있는 현대중공업의 정병옥 상무는 지난달 안토니오 김(Antonio Kim) 쿠바한인회장과 함께 아바나에서 800km 정도 떨어진 올긴 등 동부지방을 둘러보면서 한글교육을 한 번도 접하지 못 한 후예들을 접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1923년 엘보로에 ‘1호’ 쿠바 한글학교의 역사는 멕시코에 거주하던 한인 274명이 쿠바에 도착, 이들 중 대다수가 마탄사스의 외곽 에네켄 농장에 삶의 터전을 잡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년이란 멕시코에서의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스페인어의 사용, 그라고 타민족과의 결혼으로 모국어의 쇠퇴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한인들의 최초의 집단촌인 마탄사스 부근 엘보로(El Boro) 마을에 회원들의 성금으로 한글학교가 오픈됐다. 마탄사스에 국민회가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난 후인 1923년 1월5일에 새 지도부가 선출되면서 교사라는 직책이 생겨났다. 첫 교사의 직책을 맡은 이는 프란시스코 고였다. 민성학교라는 한글학교가 생겼을 때 한국어로 단지 몇 과목만 가르쳤고 2년 후에 과목들이 보충되었다. 국민회와 학생들의 부모가 민성학교를 유지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1931년 경제사정으로 학교가 휴교하게 되었을 때 미국의 여성선교사 리드 부인(Mrs. Reid)은 1년간 유치원과 민성학교를 유지시켜 주었다. 그 후 다시 휴교와 개교를 반복하면서 그때그때의 긴박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지속되었다. 엘 보로 마을이 해체된 1950년대에 에르네스토 림은 자기 집에서 밤 또는 일요일에 개별적으로 학 생들을 가르쳤다. 그나마 엘보로 마을은 한글교육이 가장 오래 지속된 곳이다. 밴쿠버서 온 이일성씨 반세기에 걸친 긴 공백기간이 2000년 초까지 이어지다 그 해 5월 수도 아바나에 드디어 한글학교가 세워졌다. 첫 번째 교사는 이일성씨였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그는 미국 시애틀한인장로교회의 지원을 받아 한인후손 이르마 임씨 가정에서 한글교육을 시작했다. 아바나 한글학교를 시작으로 마탄사스의 마르타 임 가정에 이어 카르데나스의 마르시소 박 가정에서도 한글교육이 시작되었다. 아바나 한글학교에서는 약 15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한글학교는 이씨가 2001년 말에 건강상의 이유로 쿠바를 떠남으로써 중단되었다. 그러던 중 2002년 9월 쿠바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 줄리 문씨가 뒤를 이어 같은 장소인 이르마 임씨 가정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한글학교를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 등의 한글학교를 계속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특별한 행사 때나 한 번씩 모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2004년 7월20일 도미니카공화국의 지명교회(담임목사 전재덕)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된 베자 장(장미경)씨가 매주 일요일 오후에 또 다른 그룹을 모아 이르마 임씨 가정에서 한국학교를 시작했다. 김운영[woonyoung@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