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캐 수교 40년 총정리 한국 혈맹서 동반자로 - 캐나다한국, 2000년부터 對加 무역흑자 전환, 美 제치고 최고인기 이민목적지 부상, 국내 한국인유학생 연1만명 상회 '1위'

6.25전쟁 때 한국을 도운 혈맹. 53년 휴전할 때까지 UN의 깃발아래 참전한 16개국중에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총 2만6,791명의 장병을 파병하여 516명의 희생자를 낸 캐나다와 한국은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서로 주고받는 것이 대등한 파트너의 위치로 발돋움했다. 교역면에서 볼 때 2002년도에 캐나다는 한국의 10대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이는 중국의 8위보다 약간 뒤지나 일본의 13위보다는 단연 앞선다. 수입면에서도 캐나다가 한국의 20번째 큰 수입국이다. 2002년도에는 캐나다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진 총 교역량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9.30%를 점유했다. 한국과 캐나다의 관계의 급진전은 교역뿐이 아니다. 인적교류,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 확산되고 있다. 그중에 가장 괄목할만한 것이 한국학생들의 캐나다유학이다. 근년 들어 캐나다에 유학오는 학생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캐나다는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이민선호 1순위로 부상했다. 토론토대학을 위시하여 캐나다내 여러 대학에 한국학과가 설치 된데 이어 한국에도 캐나다학과가 신설된지 3년이 된다. 2000년 3월 강남대학교의 국제학부에 설치된 캐나다학과는 3학년을 맞고 있다. 전라남도 정읍시가 캐나다의 메이플시럽 단풍나무 보급과 토론토동물원이 멸종위기의 세계적인 희귀종 몽골말을 서울시에 기증한 것 등은 한국과 캐나다간의 교류확대에 한 부분이기도 하다. 정읍시 단풍연구소는 올해 캐나다산 단풍나무 5천그루를 생산, 수액채취용을 농가에 부양하기로 했다.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토론토는 몽골말 수컷을 99년 10월에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기증됐다. 당시 8살의 「건장한 총각」 미샤가 한국으로 장가간 이유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있는 몽골말 4마리가 모두 암컷이어서 번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한국과 캐나다간의 교류가 활발해 짐에 따라 주한캐나다대사관의 직원수도 61명(캐나다외무성 통계)으로 늘어났다. 캐나다가 한국에 상주대사관을 한국일보 9층에 설립한 해는 1972년이며 초대대사는 작고한 존 스타일씨. 한-캐 관계에 있어 특이한 점의 하나는 캐나다의 대한국 군사수출이 2000년들어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밴쿠버 소재 「캐나다의 아시아태평양재단(Asia Pacific Foundation)」이 발행한 「2003 캐나다-아시아 고찰」에 의하면 한국이 캐나다로부터의 군사수입은 ▲97년 672만9천달러(이하 캐나다화) ▲98년 471만9천달러 ▲99년 376만2천달러이던 것이 2000년도에는 1,603만1천달러 ▲2001년에는 5,924만4천달러로 껑충 뛰었다. 한해를 마감하기 앞서 한국과 캐나다간의 파트너 관계를 부분으로 점검해 본다(도표 등 관계자료의 일부는 아시아태평양 재단의 자료를 참고한 것임). *교역 97년 한국의 IMF사태 이후 답보상태에 머물렀던 한-캐 교역량이 2000년을 기점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00년 캐나다와의 교역에서 8년만에 흑자를 냈다. 92년 캐나다를 상대로 3,400만달러(이하 미화)의 흑자를 낸 것을 마지막으로 99년말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한국의 대캐나다수출액이 2000년 10월말 현재 사상 처음으로 20억달러(이하 미화)를 넘어선 20억6,600만달러였다. 이는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7.7%나 증가한 것이다. 자동차, 철강, 선박 등이 잘 팔린 덕분이다. 2002년 양국간 교역량은 41억달러(이하 미화)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이 캐나다에 수출 23억4,000만달러에 수입 18억4,600만달러를 기록, 5억달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3년도에도 9월말 현재 한국은 수출 18억7,800만달러에 수입 13억7,400만달러로 역시 큰 폭의 흑자를 내고 있다. 이처럼 90년대말부터 양국간 교역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상호보완적 산업구조(캐나다-1차산업·하이테크, 한국-제조업)와 함께 상호보장세 면제 협정(99년), 통신장비 조달협정(98년)이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국의 수출품목은 자동차, 반도체, 의류, 컴퓨터, 통신기기, 철강제품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캐나다로부터의 수입은 금속광물, 석탄, 펄프 등이 주종을 이루는 것과 함께 종이제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투자 한국의 2000년 현재 한국의 대캐나다 총투자액은 6억2,500만달러. 캐나다 역시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집중됐던 소규모 투자에서 탈피, 98년 이후부터 투자규모가 커지며 투자액 누계가 11억5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2000년도의 투자액은 3,529만달러(32건)으로 99년에 비해 89.3%나 증가했으나 2001년(11월까지의 통계)의 투자액은 650만달러(25건)로 2000년도보다 무려 81.4%가 감소했다. 한편 2000년 캐나다의 대한투자액은 5억1,990달러(34건)로 49.8%의 전년대비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2001년(11월까지 통계)에도 15억600만달러로 190.7%라는 엄청난 신장세를 보였다. *유학생 캐나다에 유학하는 외국인 학생중 한국출신이 가장 많은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학생유학비자 발급 통계에 따르면 98년 이후 계속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은 2002년도에는 1만3,774명으로 한해전의 1만3,479명에 비해 2.2% 증가했다. 2002년에 유학발급 받은 한국학생 수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서 온 3만9,708명의 약 1/3에 해당한다. 중국은 1만1,395명으로 2001년도에 비해 2.3% 증가했으나 일본은 5,771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무려 10%나 줄어들었다. 2003년 상반기에는 6,30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나 줄어들었다. 이같은 감소는 토론토를 강타한 사스(SARS)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2002년 6월28일 이민난민법(IRPA)의 변경으로 6개월 이하 학생프로그램 등록시는 유학비자가 불필요함에 따라 유학생들의 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한 요인이다. 유학의 새로운 양상은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떠나는 초등학생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캐나다대사관 비자과의 집계에 다르면 초등학생의 캐나다유학은 지난 2000년 604명에서 2001년 1,127명을 거쳐 2002년에는 1,917명으로 늘어났다. 대사관내 캐나다교육원은 영어조기 교육붐을 배경으로 많은 부모가 국내보다는 현지교육이 영어를 배우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자녀를 캐나다로 보내거나 동반출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계에 따르면 중고교생은 2000년 1,678명, 2001년 2,424명, 2002년 2,462명으로 초등학생보다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민 한국이민이 지난 2년 동안 줄어들고 있다. 연방이민성의 발표에 의하면 2003년 상반기 한국이민자 수는 총 3,744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7%가 감소됐다. 2002년도에도 한인이민자 수는 7,326명으로 2001년도의 9,604명에 비해 23.7% 줄어들었다. 캐나다 전체적으로는 2002년 한해동안 모두 22만9,091명이 왔으며, 한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에 불과, 1년전인 2001년 3.38%보다도 낮아졌다. 이에 따라 출신국가별 이민자 순위에서도 한국은 1년전의 5위에서 지난해는 6위로 한 단계 떨어졌다. 특히 토론토지역 정착 한인들은 2,976명으로 한해전인 2001년도의 4,684명보다 36.5%나 대폭 감소했다. 한국의 캐나다 이민자수는 줄어들었으나 국가별 해외이주자 순위에서 미국을 따돌리고 3년째 최다 이민자 자리를 지켰다. 한국 외교통상부가 발표 2001년 국가별 해외이주자 집계에 따르면 캐나다 이주자는 전체의 49.2%를 기록했다. 도표 한국-캐나다 관계 ◆교역량(단위·미달러) 2002년도 2003년 9월말 현재 수출 23억4,000만 18억7,800만 수입 18억4,600만 13억7,400만 ◆주요 수출품목- 자동차, 반도체, 의류, 컴퓨터, 통신기기, 철강제품 수입품목- 금속광물, 석탄, 펄프, 종이제품 ◆한국의 대캐나다 총투자액(2000년 기준)-6억2,500만달러. ◆캐나다의 한국 투자액(2001년 기준)- 15억600만달러